집에 끌리는 이유는 행복 때문일까
(케이툰, <즐거운 우리네 인생> 캡쳐)
편의점에서 산 기름기 가득한 안주와 4개에 만 원짜리 맥주, 다음 화가 궁금해서 견디기 힘든 미드 한 편, 그리고 폭신한 이불까지. 고된 하루를 마치고 이처럼 달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바로 홈 스윗 홈, 집이다. 덕분에 보통 사람들에게 집은 출근하기 전부터 이미 가고 싶은 장소로 여겨진다.
현대의 뭇 직장인들이 꿈꾸는 행복한 저녁 시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건 단지 필자가 매일 퇴근을 꿈꾸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뇌과학에서는 이처럼 보상(필자에겐 맥주와 안주, 미드 등이 되겠다)이 주어지는 행복의 공간에 '조건화된 장소 선호(CPP, Conditioned Place Preference)'가 생긴다고 표현하는데, 오늘 글에서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잠깐! 갑자기 등장한 뇌과학 용어에 당황하지 마시길. 조건화된 장소 선호는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가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다. 소파 위에 올라오는 걸 싫어하던 강아지에게 반복적으로 소파 위에서 간식을 주면 얼마 뒤, 그 강아지는 소파 위에 올라오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소파 위에 올라가면 간식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즐거운 경험을 통해 소파를 좋은 일이 일어나는 곳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건에 따라 선호도가 바꼈다는 점에서 '조건화된(Conditioned) 장소(Place) 선호(Preference)'라고 불린다.
쥐의 행동 실험에서 조건화된 장소 선호도를 조사하는 장치.(출처 : Wikimedia)
행복의 조건
조건화된 장소를 선호하는 행동은 마치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처럼 우리 몸 속의 다양한 세포들이 힘을 합쳐 우리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뇌의 내분비선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 소위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화학 물질을 분비하면 신경세포는 세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이 호르몬들을 이용하고, 신경세포에서 시작된 변화는 온몸으로 퍼져, 우리가 활력을 느끼도록, 또는 음식을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도록 하는 등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야말로 모두가 힘을 합쳐 우리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셈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 캡쳐)
이 일련의 과정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과학자들이 쥐의 뇌에 전극을 심고 행동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을 하면서부터다. 1954년, 캐나다 뇌과학자 올즈와 밀러는 실험용 쥐의 뇌 속 시상하부 측면에 전극을 이식하고 쥐가 버튼을 누르면 뇌에 자극이 가해지도록 했는데, 그러자 쥐가 한 시간 동안 수백 번, 며칠 동안 계속해서 버튼을 눌러 자신의 뇌에 전기 자극이 가해지도록 한 것이다. 심지어 쥐는 버튼을 누르느라 사료와 물도 먹지 않아 쓰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올즈는 이런 실험 결과가 보상에 대한 반응이 기쁨,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1962년, 처음의 실험처럼 쥐가 버튼을 누르면 시상하부 측면에 전기 자극이 주어지지만 동시에 발에 따끔한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쥐는 처음엔 주저했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버튼을 눌러 자신의 시상하부 측면에 전기 자극을 가했다. 이 결과에 대해 올즈는 "쥐가 발에 전기 충격을 받으며 '공포'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뇌의 시상하부가 자극되면 이를 상쇄할 만큼 강력한 긍정적인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후 신경과학에서는 시상하부 측면을 '기쁨 센터(Pleasure Center)'라고 부르게 됐다.
(1970년대 들어서야 ‘기쁨 센터’는 시상하부 측면 뿐만이 아니라 복측피개부(VTA, Ventral Tegmental Area) 등을 포함하는 내측 전뇌 다발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1980년대 들어 이 부위에서 전달되는 신경전달물질이 ‘도파민’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위 이미지는 도파민이 분비되는 VTA의 보상회로. VTA에 있는 신경세포가 활성화 되면 신경세포의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분비된 도파민은 도파민 수용체를 지닌 다른 세포들에 신호를 전달한다. 이런 과정을 ‘보상회로’라고 한다.) – 사진 출처 : DOI: 10.1176/appi.ajp.163.5.786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 기쁨 센터에서 일어나는 보상 회로에 대한 연구가 조금 더 구체화됐다. 보상회로를 작동시키는 긍정적인 감정을 크게 '원함(욕구)'과 '좋아함(선호)'으로 나누게 된 것이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같은 듯 다르다. 보통은 좋아하기 때문에 원하고, 원하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약과 같은 중독의 문제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마약을 원하지만 마약을 했을 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보상)과 즐거운 일을 했을 때 느끼는 행복(보상)이 다른 기작으로 얻어지는 것임을 뜻한다.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연구진은 오피오이드가 뇌 해마에 위치한 비신경세포인 별세포의 뮤-오피오이드수용체와 결합함을 최초로 규명했다. (출처: IBS)
실제로 우리가 무언가를 원할 때는 위에서 말한 도파민이 복측피개부와 측좌핵(Nucleus Accumbens)에서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면서 보상회로를 작동시킨다. 하지만 무언가를 좋아할 때는 전뇌의 배쪽창백(Ventral Pallidum)과 측좌핵(Nucleus Accumbens)에서 오피오이드(Opioid) 시스템이 작동한다. 여기서 오피오이드란 아편(Opium)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엔돌핀이나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 등의 물질을 뜻한다. 이들은 앞선 설명에서 도파민이 신경전달물질로 쓰이며 보상회로를 돌리는 것처럼, 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쓰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신경전달물질로 쓰이는 부위가 다르고, 무언가를 좋아할 때 분비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집 좋아하는 이유, 원하기 때문일까 좋아하기 때문일까?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집이나 추억이 어린 장소처럼 특정 장소를 선호하게 되는 것을 '조건화된 장소 선호'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조건화된 장소 선호는 도파민 때문일까, 오피오이드 때문일까? 다시 말해, 우리가 그 장소를 원하기 때문일까, 좋아하기 때문일까?
싱겁지만 정답은 '둘 다'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에 가는 등 집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돼 있으면서 우리가 집을 원하도록 하고, 집에서 행복하게 보낸 시간은 우리가 집을 좋아하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가 왜 행복한 일을 경험한 장소를 더 선호하게 되는지 그 기작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이에 최근까지도 연구가 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창준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인지 교세포과학 그룹 단장의 모습(출처: IBS)
7월 30일,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서도 어떻게 행복했던 경험이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되는지를 밝힌 연구 결과를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발표했다. 여기서 '행복했던 경험'이란 위에서 언급한 '좋아함'을 뜻한다.
실험 쥐의 공간 선호를 측정하기 위한 장비. 쥐가 어느 방에 더 오래 머무는지를 토대로 공간에 대한 선호를 측정한다. (출처: Cell Reports)
연구팀은 우선 실험용 쥐가 두 개의 방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지켜보면서 쥐가 어느 방에서 더 오래 머무는지 측정했다. 더 오래 머문다는 것을 그 방을 더 선호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뒤 연구팀은 쥐가 선호하지 않던 방으로 이동했을 때 쥐에게 모르핀을 주사했다. 모르핀은 '좋아함' 회로를 작동시키는 오피오이드이기 때문에 특정한 방에서 쥐에게 모르핀을 주사한 것은 특정 장소에서 좋아하는 경험, 기쁜 일이 일어났을 때의 경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준 셈이다.
그러자 쥐는 모르핀 주사를 맞은 뒤, 선호하는 방이 바뀌었다. 이전에 선호하지 않던 방이었지만 그 방에서 모르핀 주사를 맞자 그 방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통해 "오피오이드가 특정 장소에 대한 선호 기억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 속에 별세포가 있고, 별세포에오피오이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뮤-오피오이드 수용체'가 있단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전 연구와 이번 연구를 연결하면, 행복한 일이 일어나 엔돌핀과 같은 오피오이드가 분비됐을 때 오피오이드가 해마에서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을 형성하도록 돕는다고 할 수 있다.
이창준 단장은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공포나 회피와 같은 감정과 달리 행복과 선호를 유발하는 뇌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행복한 감정과 좋아하는 감정뿐만 아니라 사랑이란 감정이 생기는 이유를 알아가는 데까지 연구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집처럼 특정 장소에 끌리는 이유가 뇌의 작용 때문이라고 하니 단지 게을러서 뿐만은 아니란 생각에 왠지 위로가 된다. 일이 잘 안 풀릴 땐 내가 귀여운 탓이라고 생각하라 했던가. 앞으로 집에 가고 싶을 땐 내 뇌의 행복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안해 질 것 같다.
<참고자료>
- The Neuroscience of Happiness and Pleasure
Morten L. Kringelbach and Kent C. Berridge, Soc Res (New York). 2010 SUMMER; 77(2): 659–678.
- Brain mechanisms of happiness
Shintaro Funahashi, PSYCHOLOGIA 54(4):222-233 (DOI: 10.2117/psysoc.2011.222)
-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생각정거장, 딘 버넷(Dean Burnett)
출처 :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4417551&memberNo=3757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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